This column was originally published by the Donga Daily (동아일보) on April 17, 2020.
한국에 산 지 벌써 12년 반이다. 10년 이상 외국인으로 살았던 이 나라에 2년 전 귀화했다. 나는 같은 나고, 한국은 같은 한국이지만 한국 국민이 되니까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보다 더 느끼게 됐다. 국내에서 주민등록증을, 해외에서 한국 여권을 직원한테 줄 때마다 속으로 ‘나도 한국인이다!’ 생각했다.
이번 총선은 내가 한국 국민으로서 하는 첫 번째 선거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명절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첫 번째 선거는 어릴 때 기억나는 첫 번째 명절처럼 신나는 날이었다. 이 선거는 한국인으로 소속감을 더 많이 느끼게 했다. 나도 이제 한국인이니까 우리 지역구를 대표할 국회의원과, 국회에 들어갈 정당들을 뽑을 때 나의 생각과 선택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에게 투표하거나 내가 투표한 후보와 정당이 성공하는 것과 별개로,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자랑스러운 한국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10대들이 유권자가 된 뒤 성인이 됐다고 실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으로서 첫 투표인 만큼 나는 많이 흥분했다. 집에 온 선거 관련 안내 우편물을 보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 지역 후보들과 정당들에 대해 공부했다. 세 가지가 신기했다. 먼저 우리 지역 후보는 4명이었는데 모두 다 남자인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정당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색다른 정당이 꽤 많았다. 마지막으로, 정당 명칭들이 자주 바뀌어 이름을 외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나니 투표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다. 4월 15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코로나19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사람이 많고 안전조치가 제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갔는데, 매우 안전하고 편하고 빠르게 투표하고 나왔다. 일단 사전투표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간 사전투표소에서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한 뒤 비닐 장갑을 받았다. 주민등록증상의 내 이름을 담당자분이 컴퓨터를 통해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줬다. 그 다음 투표를 하고 바로 나왔다. 주민등록증 확인 시 기다린 시간을 포함해서 3, 4분도 채 안 걸린 듯했다. 나의 첫 선거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빨리빨리’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귀화자 중 한 명은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이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된 유일한 귀화자였다. 귀화자가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정치를 하는 것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국내 귀화자는 20만 명을 넘었고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공무원, 교수, 기자, 사장, 시민사회활동가, 농부, 근로자 등이 있을 테고 모두 이 사회의 일원으로 그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귀화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작은 기여다.
많은 한국인에게 이번 2020년 총선은 기억할 만한 총선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안전조치가 시행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 같은 비례정당이 생겨났다. 또 처음으로 탈북자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나온 것 등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총선 결과보다, 나도 투표권이 있고 그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했다는 사실을 더 잊지 못할 것이다.
선거가 없는 국가에서 온 귀화자들이나 탈북자들은 아마 나보다 이번 선거가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투표였을 테니 말이다. 귀화시험과 면접을 볼 때 정치적 권리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는 ‘이 질문이 한국 국민이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생각했다. 이런 공부가 얼마나 필요한지 이번 선거를 통해 잘 알게 됐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총선을 치른 한국을 전 세계가 많이 주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